ㆍ여성 다리 촬영도 무죄…여성단체 반발

대법원이 30년 넘게 고수해 오던 음란의 기준을 크게 바꿨다. 그간 법원의 음란물 기준은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법관 맘대로’ 식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 대법원은 종전보다 구체적인 음란물 기준을 제시해 향후 음란물을 판단하는 새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음란 기준 대폭 구체화 =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23일 음란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동영상 제작업체 대표 김모씨(45)에 대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씨는 네이버·야후 등 포털사이트의 성인페이지에 성행위를 묘사한 동영상을 1편당 2000원씩 받고 제공해온 혐의(음란물 유포)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문제의 영상은 주로 호색적 흥미를 돋울 뿐 예술성이 전혀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음란물에 대한 추상적인 기준을 대폭 구체화했다. 음란이란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으로서 △사회통념에 비추어 전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해당 성인동영상은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형사법상 규제할 만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파기환송의 이유다.

기존 판례에서 음란이란 “사회통념상·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었다. 이는 1975년 유사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후 거의 그대로 유지돼왔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전원 합의체를 열어 판례 변경을 검토했으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기존 판례를 유지하되 기준을 구체화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 짧은 치마 여성 다리 촬영 “무죄”=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의 다리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행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30대 남성 안모씨는 2006년 12월 저녁 지하철을 타고 가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짧은 치마를 입은 20대 여성을 보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신이 서 있는 지점에서 여성의 다리를 찍었다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안씨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도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고 대법원 3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최근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옳다”며 안씨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

임희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판단 기준은 피해자에게 둬야 한다”며 “사진을 찍힌 여성은 성적 수치심과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텐데 무죄가 선고된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 이인숙기자 sook97@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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